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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신라가 주도한 남방 4국 동맹
이형모 발행인  |  hansangn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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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0.13  08:5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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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단재 신채호는 20세기 조선 최고의 사학자이자 사상가, 혁명가, 문학가이다. 그의 저서 ‘조선상고사’는 침략자 일본과 그 졸개 ‘식민사학자’들이 왜곡한 우리 민족 역사와 국가의 정체성을 밝힌 보물이다. 강성한 고구려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의 위세에 대항하여 일어난 ‘남방 4국 동맹’ 이야기를 ‘조선상고사’(신채호)에서 옮겨본다.

신라의 출발은 당초 경주 한 구석의 작은 나라였다. 백제는 온조 당년에 벌써 마한 50여 나라를 소유하고 있었다. 백제와 신라 사이에는 가라(加羅) 여섯 나라와 사벌(沙伐), 감문(甘文) 등 완충국이 있었다.

  근구수왕(近仇首王) 이후에 백제가 고구려와 혈전하는 동안에, 이제껏 백제의 절제를 받아오던 신라는 비로소 자립하여 백제와 대항하였다. 그 후 오래지 않아 고구려의 광개토태왕이 나서 국위가 크게 떨쳐 백제 아신왕(阿莘王)이 왜병(倭兵)을 불러와서 북으로 고구려를 막고 남으로 신라를 치자, 신라의 ‘나물’니사금이 고구려의 원병을 얻어 왜를 물리치고 몸소 광개토태왕을 찾아가서 인사를 하고 왕족 ‘실성’을 볼모로 삼게 하였다.

  나물니사금이 죽자 나물의 아들 눌지(訥祗)가 나이 어리므로 ‘실성’이 귀국하여 왕위를 잇고 왕자 눌지, 복호 형제를 고구려에 볼모로 보냈다. 그 후 실성이 고구려의 귀인과 결탁하여 눌지를 죽이려 하였으나, 고구려 사람이 듣지 않고 눌지를 돌려보내어 실성을 죽이고 즉위하였다.

  ‘눌지’니사금이 이처럼 고구려 덕택에 왕위를 얻었으나, 고구려가 백제를 병탄하면 신라도 홀로 견디지 못할 줄을 알았기 때문에, 박제상(朴堤上)을 보내어 ‘신라의 고구려에 대한 성의와 신의(誠信)가 일개 인질의 유무에 있지 않다.’는 말로써 고구려의 임금과 신하들을 설득했다.

  그리하여 눌지니사금은 사랑하는 아우 복호를 돌려오고, 비밀히 백제와 서로 통하여 고구려를 막으려고 하였다. 백제 또한 왜는 멀고 신라는 가까우므로 왜와는 관계를 끊고 신라와 사귀어 고구려를 막기로 결정하여, 신라와 백제 양국의 동맹이 이에 성립되었다. <삼국사기>에 눌지니사금 39년(서기 455년)에 “고구려가 백제를 치자 눌지니사금이 군사들을 보내어 구하였다.”라고 하였으니 이는 양국 동맹의 결과이다.

  그 후 고구려 장수태왕이 신위례성을 공격하니 신라 자비마립간이 1만의 병사를 보내어 백제를 구원하게 하였으나, 근개루왕은 이미 전사하고 백제 문주왕은 웅진으로 천도했다. 당시 경상남도 지역을 분할 점거하고 있던 여섯 가라 중에 ‘임나, 아라’가 강성하였는데 ‘백제의 웅진 천도’를 보고 놀라서 신라, 백제의 권유에 호응하여 대 고구려 공수동맹에 가입했다. 이로써 남방 4국(신라, 백제, 임나, 아라)의 ‘대 고구려 공수동맹’이 성립하여 40여년 동안 계속된다.

  장수태왕이, 신라가 전번의 고구려의 큰 은혜 즉 광개토태왕이 신라를 위하여 왜를 정벌한 일을 잊고 백제와 연합함을 크게 분하게 여겨, 서기 481년에 대병을 일으켜 신라의 동북지방을 침입하니 신라의 소지마립간이 몸소 비열홀(지금의 안변)에 이르러 방어하다가 대패하고 7개성을 빼앗겼다. 백제의 ‘동성대왕(東城大王)’은 양 가라국과 연합하여 신라를 구원하고 고구려 군대를 깨뜨려 그 잃은 땅을 회복하였다.

  서기 494년에 신라가 살수(대동강 상류)에서 싸우다가 고구려 군에 포위되자 백제의 동성대왕이 병사 3천 명을 보내어 구하였고, 그 다음해에 백제의 ‘반걸양’이 공격을 받자 신라의 소지마립간이 구원병을 보내어 고구려 군사를 격퇴하였다.

  장수태왕의 남진(南進)의 철편(鐵鞭: 쇠 채찍)이 4국 동맹 때문에 꺾이고 백제와 신라가 다 국가를 보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4국 동맹은 당시 조선 정치사의 일대 사건이라 아니할 수 없다. 후일 백제 동성대왕이 해외를 경략하여 중국과 왜에 광대한 영토를 갖게 되어, 백제가 고구려 이상의 강국임을 자랑할 때까지도 이 동맹은 계속되었다.

  광개토태왕과 장수태왕의 1백년 통치가 계속된 ‘역사상 최강의 고구려’에 맞서서, 백제와 신라가 국가를 보전하고 살아남은 ‘역사의 비밀’은 바로 신라 ‘눌지니사금’이 주도한 남방 4국 동맹이었고, 가장 위험한 40여년을 동맹이 계속된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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