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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경주 첨성대-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박창범 지음) 에서 발췌
이형모 발행인  |  hansangn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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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9.11  08: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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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고대 천문 관측대

   
▲ 이형모 발행인

천문 관측을 수행하는 공식적 장소로서의 천문대를 살펴보면, 단군조선 시대의 천문 제단으로 알려져 있는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고구려의 천문대로 추정되는 평양성의 첨성대, 신라 선덕여왕 때(633년경) 축조된 경주 첨성대, 개성 만월대 서쪽에 있는 고려의 첨성당, 경복궁 안에 있던 대간의대(임진왜란 때 파손), 조선의 세종대왕 때 세워졌다고 추정되며 현재 비원 옆에 위치한 소간의대, 숙종 14년(1688)에 세워져 현재 창경궁에 있는 관천대 등이 있다.

우주의 섭리를 겹겹이 두른 경주 첨성대

경주 반월성 동북쪽에 있는 신라 첨성대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대 천문대이다. 우아한 미와 천문 지식의 용융과 조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천문 관측대이기도 하다. 몸통을 원으로, 머리를 정사각형으로 만들어 당시의 우주구조론이었던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天圓地方)”는 생각을 담고 있다.

원형 몸통부에서 정자꼴 머리부까지 29층 석재를 쌓아 음력 한 달의 날수, 즉 초생달에서 다음 번 초생달까지의 날수(29.5일)와 일치시켰다. 정자석을 한 층으로 볼 경우 정자석과 몸통부의 층 수는 28수 별자리의 개수와 일치한다.

또한 원형 몸통부의 석재는 총 27층으로 구성하여, 달이 공전하여 하늘의 같은 별자리에 되돌아오는 주기(27.3일)에 맞추었다. 또 몸통부 중간에 있는 창의 아래와 위의 층수를 각각 12층으로 하여 1년 12달과 24절기를 상징하도록 만들었고, 기단석에도 12개 석재를 사용했다.

   
▲ 국보 제31호 신라의 경주 첨성대(사진='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 발췌)

원형 몸통부 하부의 6층을 이루고 있는 돌 수는 각각 16, 15, 15, 16, 16, 15 개다. 이는 동지~소한, 소한~대한, 대한~입춘, 입춘~우수, 우수~경칩, 경칩~춘분 사이의 날수와 같다.

첨성대의 몸통부에는 석재가 몇 개나 사용되었을까? 몸통부에는 구조적 안정을 위해 정자석 6개가 안쪽부터 빗장처럼 끼워져 튀어나와 있다. 이 정자석들을 빼면 옆에서 보이는 몸통부 석재의 총수는 364개이다. 그런데 전체가 27단인 몸통부의 26단 안쪽 위에는 판석이 하나 걸쳐져 있어 27단과 나란히 몸통부 상부를 이루고 있다. 위에 덮인 이 판석까지 더하여 모두 365개의 석재가 첨성대 몸통의 외부를 구성하고 있다. 즉, 1년의 날수에 정확히 맞추어 석재를 쌓아 축조한 것이다.

실제로 천문 관측한 천문대인가?

몸통부 가운데의 창문과 맨 위쪽에 얹혀진 정자석은 네 방위에서 시계 방향으로 16도 돌려 맞춰져 있다. 첨성대는 궁궐 안이나 가까이에 지어졌던 고려와 조선시대의 천문대와 마찬가지로 궁궐의 평지에 축조되어 있다.

높이는 9.5m로, 높이가 2~4m 정도인 고려와 조선시대의 현존 천문대들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따라서 첨성대가 평지에 있다는 점, 크기가 현대 대형 천문대에 비해 작다는 점 등을 들어 천문 관측 장소로 부적합하다는 일부의 시각은 그릇된 것이다.

이 경주 첨성대는 백제 점성대(占星臺)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경주 첨성대(633)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는 점성대(675)가, 중국의 당나라에서는 주공측경대(周公測景臺 723)가 축조되었다.

첨성대에 깃들어 있는 고도의 천문 지식과 첨성대 축조 직후 주변국들에서 지어진 천문대의 역할, 또 옛 문헌의 내용 등으로 미루어 보아, 첨성대는 ‘하대 신라’ 당시 천문 관측이 수행되었던 천문대라고 생각된다.

첨성대는 반월성 가운데 우뚝 서 있고            

첨성대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삼국유사’에 있는 “선덕여왕 때 돌을 다듬어 첨성대를 쌓았다.”는 짤막한 기록이다. 또 ‘세종대왕실록’ <지리지> 경주부에는 “첨성대, 당 태종 정관 6년(633)에 신라 선덕여왕이 쌓은 것이다.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위는 방형, 아래는 원형으로 높이가 19척 5촌, 위는 둘레가 21척 6촌, 아래 둘레가 35척 7촌이다. 그 가운데를 통하게 하여 사람이 가운데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라는 설명이 나와 있다.“”

포은 정몽주의 눈에 비친 첨성대는 어떠했을까?

“첨성대는 반월성 가운데 우뚝 서 있고,
 옥피리 소리는 만고의 풍치를 머금었네.
 문물은 이미 신라를 따라 다 갔건만,
 오호라! 산수는 예나 이제나 똑같네.”

   
▲ 왼쪽부터 고려 천문대인 개성 첨성당의 축대부분, 비원 옆 조선 시대의 소간의대(사진='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발췌)
   
▲ 보물 제851호 창경궁 안 조선 시대의 관천대(사진='하늘에 새긴 우리역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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