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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탐방] 교남동 홍난파 가옥울밑에 선 봉선화 선율을 들을 수 있는 고색창연한 고택
김지태 기자  |  jtsumm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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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6.10  17:4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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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터널 위 길을 따라 교남동 쪽으로 접어들면 아래로 아파트 건축이 한창인 돈의문 뉴타운 건설현장이 보이고 윗편으로 공원이 보인다. 공원 입구에 고색창연한 2층 벽돌집이 있는데 바로 홍난파 선생이 살던 가옥이다.  

붉은 벽돌과 화강암, 화단과 담쟁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예쁜 집이다. 꽤 잘 만든 집이어서 기념관이 있는 실내 바닥의 마루는 예전 지을 때 그대로라고 한다. 
 
입구에 홍난파 선생 흉상이 보이는데 이 흉상은 한때 수모를 겪기도 했다. 홍난파 선생이 친일파 명단에 올랐을 때 국회의사당 어딘가 처박혀 있다가 친일파 명단에서 제외된 후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현재 이 곳에는 홍난파 선생의 후손이 낮에 머물면서 손님들에게 자세한 설명을 해 주고 있다. 운이 좋으면 집 안에서 난파 선생의 대표작 ‘울 밑에 선 봉선화’를 은은한 피아노 선율로 들을 수 있다. 
 
원래 세브란스 의전에 들어갔던 홍난파 선생은 음악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버리지 못해 집안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고 한다. 역시 음악가였던 사촌동생과 함께 악단을 조직해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음악활동을 주도해 나갔다. 
 
동경음대 성악과 출신으로 장래가 촉망되던 가수 윤심덕과 함께 지방순회 공연도 자주 가곤 했다. 그 당시에도 공연은 큰 돈이 드는 행사였는데 경비 일체를 윤심덕의 애인이자 극작가이자 갑부의 아들인 김우진이 댔다고 한다. 
 
부자가 예술가들을 위해 멋지게 파트론 역할을 할 줄 알았던 낭만이 있던 시기였는데, 잘 알다시피 윤심덕과 김우진은 현해탄에 몸을 던져 동반자살했다. 두 사람 모두 서른이 안된 29세였다. 홍난파 선생도 그리 오랜 인생을 살지 못해서 40대 초반에 세상을 떠났다. 
 
이 곳에 오면 홍난파 선생이 살던 시절 음악과 예술을 사랑했던 청춘들의 아름답고 애절한 사연과 흔적들을 만날 수 있다. 참고로 홍난파에서 난파는 호이고, 본명은 영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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