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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경영]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신성대 동문선 대표  |  hansangn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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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11.12  12:2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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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중의 으뜸이 ‘사람 다루는 기술’이라면, ‘매너’야말로 자기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최고의 무형자원입니다. 글로벌 매너는 글로벌 마인드로 세상을 보는 시야와 상대방에 대한 합당한 인식, 제3자 불특정 일반 대중에 대한 배려, 당당히 대우받기 포함 전인적 소통 능력, 비즈니스 협상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 혁신은 매너를 통한 사람됨이어야 합니다. 선진시민들은 ‘매너’와 ‘품격’으로 경쟁합니다.
   
 

매너의 끝은 신뢰

 자원 없는 나라 스위스는 무엇으로 먹고 살겠습니까? 절박함입니다. 불과 150여 년 전만 해도 스위스는 용병이 아니고선 생계를 유지하기가 힘든 나라였습니다.

 2014년 11월 12일, 스위스 제네바 소더비경매장에서 명품 수제 회중시계 <헨리 그레이브스 파텍 필립 슈퍼컴플리케이션>이 시계 경매 사상 최고가인 263억 원을 기록하며 익명의 수집가에게 넘어갔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시계로 등극한 이 회중시계는, 1925년 미국 뉴욕의 부호 헨리 그레이브스가 주문해 무려 5년 동안의 제작 기간을 거쳐 완성된 것입니다.

 오늘날 스위스를 시계의 나라로 만든 원동력은 목숨을 신의와 맞바꾼 용병 정신에서 나옵니다. 서양 법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해 주는 라틴어 명제 ‘fides servanda, 신의는 지켜져야 한다’라는 정신이 체화된, 정확 · 약속 · 신뢰가 생명인 시계는 스위스의 상징인 것이지요. 세계의 신사들이 굳이 스위스 명품시계를 차는 이유가 반드시 돈 자랑하기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신사의 자격, 즉 신뢰를 사는 겁니다.

 어디 시계뿐입니까? 은행 역시 신뢰가 밑천이지요. 세계의 부자들이 이자를 바라고 스위스 은행에 돈을 맡기는 것 아닙니다. 게다가 요즘 웬만한 다국적 연구소, 각종 IT산업 데이터 저장소, 세계 유명 보석 기업들의 비밀 창고도 스위스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신뢰를 고부가가치 안전 산업으로까지 확장시킨 것이지요. 1인당 국민소득 9만 불로 세계 최상위에다 다음 천년의 먹거리까지 이미 다 준비해 놓은 겁니다.

 ‘신의’를 자원화한 나라가 스위스라면, ‘에티켓’을 자원화시켜 성공한 나라는 일본입니다. 메이지 유신 근 백년간의 국민계몽을 통해 천황에 대한 충성과 복종, 사무라이 정신을 정직 · 성실 · 청결 · 친절이라는 글로벌 이미지로 구축한 것이지요. 거기에다가 지진, 화산, 쓰나미, 태풍 등 끊임없는 자연재해는 협동심과 질서 의식, 집요한 과학 정신을 길러주었습니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일본만큼 신뢰받고 있습니까? 일본인들만큼 정직하고 정확하고 청결하고 친절합니까? G20회원 국가다운 교양과 매너를 갖추었습니까?

   
 

에티켓과 매너의 차이

 서울 남산의 서쪽 해방촌 위편 산등성길 버스정류장에 가보면 가끔 외국인 거주자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봅니다. 마침 버스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저쪽에서 헐레벌떡 뛰어오는 사람이 있을 때, 마지막으로 차에 오르는 사람이 한국인이면 십중팔구 급하게 올라타고 버스는 그냥 출발해 버리기 일쑤입니다. 한데 외국인일 경우에는 저 멀리 버스를 향해 뛰어오는 사람이 있을 경우 올라타지 않고 기다렸다가 그 사람을 먼저 태운 후 자신도 버스에 오릅니다. 이는 서양 백인뿐 아니라, 한국에 취업 온 듯한 방글라데시인이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 이렇게 해서 먼저 태워 주면 한국인들은 마치 다행이라는 시늉을 하면서 불쑥 들어가 버리고 말지요. 어쩌다 “땡큐!”라고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하는데, 이는 상대의 호의에 대한 답례의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익스큐즈 미!”라고 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 버스를 잡아 줘서 ‘고맙다’가 아니라, 나 때문에 공연한 수고를 끼쳐 ‘죄송하다’고 하는 표현이어야 맞습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위해 서비스한 게 아니라, 사회적 인격체로서 손해(불편)를 감수한 것입니다.

 이처럼 줄을 서서 차례로 버스를 타는 건 ‘에티켓’이지만, 뒤늦게 뛰어오는 사람을 위해 버스를 잡아두어 기다리게 하는 건 ‘매너’입니다.

 반대로 그들은 절대 그런 배려를 하지 않는 한국인들에게 매번 당하지만 자신들은 반드시 그렇게 합니다. 왜? 자신의 사회적 인격체로서의 존엄성을 위해 끝까지 매너를 지키기 때문이지요. 공(公)의 개념이 부족한 성질 급한 한국인들은 간혹 남을 위해 배려를 했다가도 상대의 고마워할 줄 모르는 몰염치 때문에 다시는 그런 친절을 베풀지 않겠다고 투덜대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옳은 생각이 아닙니다.

   
 

“Manners maketh man!”

 매튜 본 감독의 스파이 액션 영화 <킹스맨>이 내건 메시지로, 1382년 영국 윈체스터칼리지를 설립한 위컴 주교가 한 말입니다. 여기에다 “타인보다 우수하다고 해서 고귀한 것이 아니라 과거의 자신보다 우수한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고귀한 것이다”라는 헤밍웨이의 명언과 함께 ‘타인을 위해 희생할 줄 아는 용기가 진정한 신사의 자격’이라는 메시지를 영화의 3대 황금률로 삼았습니다. ‘manner’는 본래 수단 · 방법이란 뜻이지만, 복수가 되면 ‘품격’이란 의미를 지닙니다. ‘maketh’는 make의 중세식 고어입니다.

 어느 나라든 사정이 비슷하지만 사회 초년병인 파리지엥의 월급 역시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절반이 연금으로 무자비하게 잘려 나갑니다. 게다가 나머지의 반이 다시 바캉스 때 쓰기 위해 미리 떼어집니다. 그 나머지, 고작 반의반으로 집세까지 내며 한 달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먹기조차 힘듭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길거리서 샌드위치로 끼니를 때워 가며 돈을 모읍니다. 저축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일주일에 딱 한번은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그다지 고급하지 않은 식당에서라도 제대로 된 저녁을 먹습니다. 애피타이저, 메인, 하우스 와인, 디저트 및 에스프레소 커피, 풀코스 요리로 자신의 인생을 셀리브레이팅을 하는 겁니다. 만약 모은 돈이 디저트까지 시킬 만큼 되지 않으면 그 주에는 외식을 포기합니다. 대신 다음주, 아니면 그 다음주까지 미루어서라도 반드시 풀코스 식사를 즐깁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입니다. 일주일에 적어도 한 끼는 웨이터의 서빙을 받으며 디저트까지 포함된 2시간 이상의 저녁식사를 푸근히 즐기고자 하는 것입니다. 저 혼자서라도 자신의 인간존엄성을 지켜주려는 것이지요. 그 한 끼를 위해 나머지를 굶거나 샌드위치로 때우는 겁니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에는 나이 많은 노인들도 아주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외출을 하거나 카페에서 차를 마시는 풍경을 자주 봅니다. 뒷모습만 보고는 젊은 멋쟁이인 줄 착각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굳이 젊어 보이고 싶어 멋내려고 그러는 것 아닙니다. 한국인들처럼 늙었다고, 가난하다고 함부로 막살지 않는 겁니다. 그 또한 인간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지요. 옛날 조선의 선비들 역시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자기를 존중할 줄 아는 자만이 남을 존중할 줄도 압니다. 더 나아가 고객을 존중할 줄도 알고, 고객의 심리 상태를 잘 알기 때문에 물건을 잘 팔아 고객의 돈을 빼내는 능력을 지니게 되는 거지요. 한국의 가게는 목 좋은 곳을 잡는 것이 가장 최우선 조건입니다. 하지만 그런 건 진정한 비즈니스의 진수가 아니지요. 목 좋은 곳에서야 누군들 장사 못하겠습니까! 목이 좋지 않은 곳이라 해도 인간 존엄성으로 고객과의 소통을 통해 상품을 팔 줄 알아야 합니다.

   
 

‘인간성 회복’이 아니라 ‘인간존엄성에 대한 인식’부터

 예전에 뉴스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혼수상태에 빠졌던 남성이 12년 만에 회복해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마틴 피스토리우스라는 남성은 12세 때 희귀병인 ‘크립토콕쿠스 뇌막염’을 앓아 의식불명에 빠졌었지요. 부모의 극진한 간호로 2년 후 의식은 깨어났지만 그걸 가족들에게 알릴 방도가 없었답니다.

 다행히도 의식이 돌아온 지 10년이 지난 스물네 살에 그의 뇌는 완전한 기능을 되찾았습니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하지만 마틴은 현재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으며, 단란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그는 자신이 갇힌 몸에서 벗어난 원동력을 ‘존엄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기적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12세 이전에 그는 이미 ‘인간존엄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안데르센의 동화 중에 <두 처녀>라는 짧은 작품이 있습니다. 자갈로 길을 포장할 때 사용하는 ‘달구’라는 도구가 있었답니다. 단단한 나무로 아래쪽은 넓고 철끈으로 단단하게 둘러져 있으며, 가늘고 긴 꼭대기에는 두 개의 팔이 튀어나와 있지요. 포장공들이 이 두 팔을 잡고 들었다 놓았다를 하며 자갈을 다집니다. 예전부터 무슨 이유인지 덴마크 사람들은 이 달구를 ‘처녀’라고 불렀답니다.

 한데 어느 날 도로국에서 이 ‘처녀’ 대신 ‘달구’라는 정식 명칭으로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연장 창고에 있던 두 처녀는 이 새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처녀는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이고, 달구는 물건에 붙이는 이름이지. 우린 물건 취급을 받을 수 없어. 이건 모욕이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쪼개져서 땔감이 되는 게 나아!”

 같은 창고에 있던 수레며 측량기 등이 새 이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라고 설득했지만, 두 처녀는 자기들끼리 부를 때에는 항상 ‘처녀’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 중 나이 어린 처녀는 ‘달구’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바람에 항타기(杭打機, 말뚝 박는 데 쓰는 커다란 망치)와의 약혼까지 깨어져 계속 처녀로 남았다고 합니다.
   
 

매너는 자기 존중의 실천

 기본을 우습게 아는 한국인들은 툭하면 “에티켓은 지킬수록 손해!”라며 무시하려 들곤 하지요. 상대가 상스럽게 군다고 해서 똑같이 상스럽게 나가는 것은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에티켓이든 매너든 상대방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자기 존중, 인간 존엄을 위한 것입니다. 

 옛말에 ‘공경하면서 멀리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게 선비들의 기본적인 처세술이었습니다. 화가 날수록, 상대가 미울수록, 상스러울수록 더욱 예(에티켓)를 쌓아올려 멀리하였습니다. 소인배는 상스러움으로 우열을 가리려 들지만, 군자는 더욱 공경한 언행으로 자기 방어벽을 높였습니다. 서양 상류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속으론 아무리 경멸하고 원수같이 여겨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관계를 정리합니다. 호불호(好不好)가 명료한 한국인들이 서양인들의 이런 상투적인 친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착각하여 오버하다 난감한 경우를 당할 때가 많습니다.

   
 

‘인성’이 아니라 ‘인품’이다

 인성교육법이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세계 최초의 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인성(人性)’이란 교육의 대상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바뀌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맹자, 순자, 율곡, 퇴계 선생을 다시 불러 모셔도 결론이 나지 않을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한데 용감한 한국인들은 그걸 가르치겠다고, 아니 뜯어고치겠다고 ‘인성교육법’이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랬으랴 짐작하고도 남지만 아무래도 무리한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인성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어떻게 고치겠다는 걸까요? 그저 수천 년 전 요순(堯舜), 공맹(孔孟)의 행적과 남긴 말씀 외우면 인성이 개선된다던가요? 기실 세계적으로 유학, 아니 유교를 가장 지극히 받들어 온 한민족이 아니던가요? 그런 나라가 새삼 공맹(孔孟)을 들먹이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렴 ‘인성교육법’을 만든 그 선량들부터 ‘인성 점검’을 좀 했으면 싶기도 합니다.

 선진문명사회는 ‘인간 존중’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실정법을 넘어서는 자연법이 있듯이, 인간존엄성이 위협받는다면 성문헌법조차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법이란 인간 존엄성 보호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매너란 그같은 사고에서 싹튼 것이기에 한국식 법 정신과 전통 윤리 관념만으론 이해하기가 좀체 버거울 때가 많습니다. 글로벌 비즈니스 본선무대는 신사들이 노는 곳입니다. 제대로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매너는 영구자원이다

 한국은 가난에서 벗어나 경제성장, 산업화, 민주화, 인권, 복지에 매진해 왔습니다. 품질경영으로 국민소득 1만 불을 달성했고, 기술경영으로 2만 불 시대도 열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민족이 어떻게 성숙되어야 하고,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로 성장해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고 하겠습니다.

 새 정부의 ‘창조경제’는 표현상의 무리와 대 국민 소통상 미숙함으로 인해 진의가 오해되거나 정체성 혼돈에마저 빠져 있습니다. 한국사회 전체가 무한상상력으로 결집되어 다같이 달려 나아가야 할 국민적 패러다임에도 불구하고 일개 국지적인 정부 정책의 하나로 제약시키는 소통 난맥의 함정에 빠져 있지요. 창조경제! 그 출발점은 이를 가능케 하는 ‘모든 경제자원 요소와의 전인적 완전 소통’ 다른 말로, ‘품격경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어느 나라든 국민소득 1만 불까지는 성실, 2만 불까지는 기술로 가능합니다. 그렇지만 3만 불은 문화, 4만 불 이상은 품격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고품격 매너가 아니고서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말이지요. 첨단기술 확보에만 열을 낼 것이 아니라, 이제는 최고 품격의 매너를 갖추는 데 공을 들여야 합니다. 기술, 문화, 품격을 동시에 축적해 나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게 진정한 경쟁력입니다.

   
▲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및 ㈔전통무예십팔기보존회장
 청와대부터, 대통령부터, 재벌 회장님들부터 정격 글로벌 매너로 환골탈태해야 합니다. 그런 게 진짜 디자인입니다. 상품이나 사옥만 디자인할 것이 아니라 국가 경영, 기업 문화, 리더의 품격부터 디자인해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달리 돈 드는 일도 아닙니다. 인생을 제대로 즐기면서 돈 버는 일입니다. 그걸 왜 안 배우고 안 가르친단 말입니까?

 ‘품질’과 ‘품격’, ‘일등’과 ‘일류’는 다른 성질입니다. 결국은 기본입니다. 차라리 여기서 한 발 물리는 한이 있더라도 과연 우리가 중진국다운 매너와 품격, 그리고 문명인다운 자세를 지녔는지, 선진국으로 들어가기 위한 체질개선작업을 어떻게 해나가야 할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겠습니다. 후대에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막장드라마 한류도, 또 다른 경제 기적도 아닙니다. 자기 가치를 높이는 선진문명적 교섭 문화, 진품 매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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